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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국제신문] 시론/"지하벙커"에서 나오라

  • 관리자
  • 조회 : 4131
  • 등록일 : 2009-02-02
[시론] "지하벙커"에서 나오라 /제정임
"전시 논리"와친재벌 정책…국민의 배신감 커져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히틀러 암살시도를 다룬 영화다.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던 2차 대전 말기,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군사령부로 전보된 슈타펜버그 대령은 히틀러를 암살하기로 결심한다.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공격 명령을 고집하는 히틀러가 있는 한 독일의 파멸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가 "늑대 굴"로 불리는 히틀러의 벙커(엄폐호)에서 열리는 작전회의에 사제폭탄을 숨겨 들어가는 장면 등을 긴박감 넘치게 보여준다.

요즘 청와대 "지하벙커" 얘기를 들으면 이 영화에서 본 "늑대 굴"이 떠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들어 매주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경제가 워낙 위급하니 전시처럼 긴장감을 갖고 대응하자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진짜 포탄이 오가는 상황도 아닌데 지하벙커라니, 한 이동통신사의 광고처럼 "쇼"를 하는 거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많다. 더 불길한 것은 히틀러가 "늑대 굴"에 은신한 채 젊은이들을 "사지(死地)"로 내 모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요즘 "높은 분들"이 지하벙커에 모여 내린 결정 중에는 청와대 담장 밖 경제 현장에서 "사투(死鬪)"를 벌이는 사람들을 더 궁지로 몰아넣는 정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고용제한기간을 현재의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한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2년 기간 제한 때문에 무더기 해고를 당하게 될 비정규직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노동계는 "값싸게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남짓에 불과하며, 언제 "계약 해지"가 될지 몰라 늘 전전긍긍해야 하는 비정규직은 이 시대의 "2등 노동자" 신세다. 정부안대로 기간이 늘어나면 지금 정규직을 쓰고 있는 기업들도 더 많은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울 것이고, 더 많은 노동자의 삶이 불안하고 궁핍해질 것이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뛰어주어야 할 정부가 "경제 위기"를 내세워 기업 입장만 봐주고 있으니 노동계의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개발 보상에 불만을 가진 세입자들의 시위를 경찰 특공대로 진압하려다 6명이 숨지는 참사를 빚은 용산 사태는 "지하벙커"가 함축하고 있는 "전시 논리"의 극단적 부산물이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니, 얘기를 들어주고 설득할 시간이 없다. 힘으로 제압하라!" 그래서 독재 정권 때도 보기 힘들었던 비극이 빚어졌으나, 청와대의 반응은 "쿨"하기 짝이 없다. 불법시위가 문제였으며, 경찰력 동원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민주 사회의 시민이 주장할 수 있는 재산권과 표현의 자유, 민주 사회의 척도인 대화와 합의 도출의 과정이 깡그리 무시되었는데도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뿐이랴. "지하벙커의 첫 작품"으로 뽑히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 촛불시위 등을 어렵게 만들려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사이버모욕죄 신설 논의 등 "비판"과 "이의제기"를 막으려는 정부여당의 노력은 섬뜩할 만큼 집요하다. 최근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연구기관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 심하다" "경제전망치까지 관여한다"는 주장과 함께 사의를 표한 것은 우리사회가 정말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이 기업중심, 특히 재벌 중심적이라는 것은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다. 군사적 위험 논란까지 외면하며 "제2롯데월드"를 허가해주기로 한 것이나, 건설업체들의 이익이 걸린 재개발사업을 무슨 수를 써서든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이나, 기업들의 입맛대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려고 애쓰는 것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지하벙커"에 모이는 고관들이 늘 만나는 "대한민국 1%"는 여기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피땀 흘려야 하는 국민 가운데는 배신감과 좌절감, 분노를 키워가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지하벙커"에서 나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남은 4년마저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입력: 2009.02.01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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