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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동영상] 저자와 한 밤을 보내다: 지주연 이동현
- 관리자
- 조회 : 5085
- 등록일 : 2008-02-29
‘섬진강 아이들’과 ‘J스쿨 학생들’
<오마이뉴스>의 연중기획 <저자와 한 밤을 보내다>에 <여치가 거미줄에서 탈출했다>를 출간한 섬진강변의 초등학교 2학년 시인들이 첫 손님으로 초대됐다. ‘섬진강 아이들’은 행사에 참여한 ‘서울 아이들’과 함께 21일부터 1박2일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강화도의 폐교를 리모델링한 오마이스쿨에서 열린 이 행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지주연이 전체 진행을, 이동현이 취재를 맡아 아이들과 함께 뛰고 놀았다. 이동현과 지주연의 글, 그리고 <오마이뉴스>에 실린 동영상을 소개한다.
아이들의 시를 통해 깨닫는 세상
- 이동현
더 추운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들른 쇠기러기 떼처럼, 섬진강 시인 김용택과 12제자들이 강화도로 몰려왔다. 덕치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쓴 시집 ‘여치가 거미줄에서 탈출했다’의 출간을 기념하고, 독자와 저자가 어울리는 <저자와 한 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덕치초등학교 2학년 김용택입니다.” 뿔테안경에 작은 목도리, 책표지의 사진과 복장까지 아직 달라지지 않은 김용택 시인이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초등학교 2학년은 세상에서 가장 바쁩니다.” 김 시인의 말처럼 아이들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깔깔거린다. “아이들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도 아이들은 재밌어요.” 바쁘기로 치자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쉴 틈이 없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먹고 살기가 팍팍한 게 현실이다. “가지면 가질수록 어른들은 더 재미없어집니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뭡니까?” 시인은 어른들에게 왜 바쁜지를 묻는다.
시인은 철학적 삶의 태도를 강조했다. “글을 잘 쓰려면 하나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시인이 아이들에게 지난 1년 동안 강조한 말이라고 한다. “삶을 잘 들여다보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나와의 관계를 알기 시작하고,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생각이 일어납니다.”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해 그의 제자 정현아는 “느낌이나 일이 일어난 차례대로 쓰면 된다”고 했다.
어른들은 바라보는 게 없으니까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한다. “너도나도 자기 자신만 자세히 들여다 봐.” 그러니까 재미가 없다. 산으로 들로 놀러 가서 고스톱 치기 바쁘고, 고기 구워 먹느라 정신이 없다. “12월에 호박꽃이 피었다면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니까.” 들여다보지 않으니 자연도 사람도 다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다.
어른들은 바라보는 게 없으니까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한다. “너도나도 자기 자신만 자세히 들여다 봐.” 그러니까 재미가 없다. 산으로 들로 놀러 가서 고스톱 치기 바쁘고, 고기 구워 먹느라 정신이 없다. “12월에 호박꽃이 피었다면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니까.” 들여다보지 않으니 자연도 사람도 다 자신과는 무관한 것이다.
어른들은 시를 ‘읽으려고’만 한다. 그래서 ‘자폐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시 쓰기는 하나의 놀이다. “시를 언제 쓰고 싶냐”는 질문에 양대길(덕치초교)은 심심할 때 쓰고 싶어진다고 했다. “재밌게 시를 쓰고 난 뒤에 기분이 좋아요.” 정현아의 대답이다. 70년대 이오덕의 ‘일하는 아이들’(보리)이 ‘일’로 세상을 배웠다면, 섬진강 아이들은 ‘놀이’로 세상을 배운다. ‘무엇이든 하나만 진정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 이치를 통달할 수 있다’
“선생은 쩨쩨합니다. 38년 동안 한 말이 ‘복도에서 뛰지마라’, ‘떠들지마라’…….” 시인은 아이들에게 고함도 지르고, 꿀밤도 먹였다. 밤늦게까지 자지 않고 쿵쾅대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벌세우기도 했다. ‘선생 김용택’은 늘 아이들을 관찰했다. 그는 아이들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통달하고 있는 걸까?
“마치 나무가 새싹을 피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은 진지합니다.” 시인은 아이들의 시와 그림에 사인을 미리 받아 두었단다. 언젠가 이 아이들이 훌륭한 시인, 어른으로 자라나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란다. 아이들은 지금 막 새싹을 피우고 있다. 언젠가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을 거다. 그때가 되면 시인은 아이들의 작품을 팔 수 있을까? 시인은 어른들에게도 시가 주는 ‘희망’을 팔고 싶어 하는 듯했다.
“콩을 까는데 왜 ‘콩 콩 콩’ 소리가 나요?
- 지주연
- 지주연
<저자와 한 밤>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은 아홉 살 안팎의 초등학생들이다. 저자와 독자가 모두 어린 애들인데 이들 사이에 책을 통한 대화가 가능할까? 의구심은 사회 진행 5분 만에 사라졌다. 그리 산만하고 시끌벅적했던 아이들은, “준비됐나요”라는 걱정스런 질문에 “준비됐어요”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초롱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걱정스러웠던 마음은 안도감으로, 그리고 벅찬 감동으로 변해갔다.
어린이들 사이 질의응답은 확실히 어른들과 다르다. 격식이 없고, 자유스럽다. 그래서 진솔하다. 서울에서 온 김우경(10)이 <콩>이라는 시를 쓴 정현아(9)에게 묻는다.
“콩을 까는데 왜 ‘콩 콩 콩’ 소리가 나요? 까봤는데 안 나던데…….”
“내가 그렇게 쓰고 싶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쓰는 거예요. 재밌으라고…….”
어린 작가는 보고 느끼는 대로 글을 쓰고, 어린 독자는 읽고 느끼는 대로 질문한다.
“콩을 까는데 왜 ‘콩 콩 콩’ 소리가 나요? 까봤는데 안 나던데…….”
“내가 그렇게 쓰고 싶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쓰는 거예요. 재밌으라고…….”
어린 작가는 보고 느끼는 대로 글을 쓰고, 어린 독자는 읽고 느끼는 대로 질문한다.
섬진강에서 온 꼬마 작가들에게 어른 참석자들의 질문도 쏟아진다. “농촌 아이들과 도시에서 온 아이들의 다른 점은 무엇이 있을까?”
“없어요.” 12명이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무언가 다를 것이라 기대했던 어른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답변이었을지 모르나, 어린이들은 너무나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없어요.” 12명이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무언가 다를 것이라 기대했던 어른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답변이었을지 모르나, 어린이들은 너무나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밤이 되자,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를 하며, 섬진강 아이들, 강화도 아이들, 서울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 모두 동심에 젖어들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영혼의 소유자들. 왜 김용택 시인이 “2학년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고 하는지 알 듯했다.
에피소드 1
여학생인 양승진(9)은 글과 그림이 <여치가 거미줄에서 탈출했다>에 가장 많이 실렸을 만큼 재능이 탁월해 보였다. 그런데도 갖가지 행사에서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말이 없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말을 하지 않을까 의아했다.
마음을 열기 위해 숙소로 찾아갔더니 단짝 친구 노희진과 침대에서 풀썩풀썩 뛰면서 놀고 있었다. 그러다 승진이의 모자가 벗겨졌다. 머리카락이 앞쪽에는 아예 없고, 옆이나 뒤쪽도 쥐 파먹은 듯 들쭉날쭉했다. 화들짝 놀래며 다시 모자를 쓰는 승진이를 보면서 안쓰러워하고 있는데 희진이가 말했다. “쟤네 집 개가 저랬어요.”
승진이도 말문을 열었다.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개가 갑자기 물어뜯어 죽은 척 해 살아났다는 얘기였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만져주며 말했다. “승진아, 머리는 금세 자라.”
에피소드 2
밤 행사까지 마친 뒤, 숙소에 들어가 조금 쉬고 있는데, 같은 방을 쓰고 있던 섬진강과 강화도 여자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사회 잘했어요.” 크고 작은 행사 사회를 여러 번 봤지만 어느 때보다 더 가슴이 찡했다. ‘얘들이 한 밤 같이 자게 됐다고 마음속으로 나를 응원하고 있었나?’
“선생님, TV에 나올 거죠”라고 물으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난, TV에 나오는 사람 아니야. 언니도 아직 학생이야”라며 말꼬리를 내렸더니, “그래도 나중에 아나운서 할 거잖아요, 미리 사인 연습해 둬요”라고 다그쳤다. ‘그래 우리, 꿈꾸는 건 자유다.’ 강화도 폐교에서 난생 처음 사인을 만들고, 꼬마 작가들과 사인을 교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