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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뉴스메이커]국내 최초 저널리즘스쿨 개설(김광림총장님)
- 관리자
- 조회 : 5248
- 등록일 : 2008-01-11
[정동초대석]세명대 김광림 총장 | ||||||
2008 01/15 뉴스메이커 758호 | ||||||
“사회 공동체에 기여할 ‘미드필드 인재’ 양성”
저널리즘 스쿨은 세명대 재단과 김광림 총장, 그리고 이 학교 이봉수 교수의 합작품이다. 튼튼한 재단과 김 총장의 추진력이 이 교수의 기획력과 만나면서 저널리즘 스쿨 설립은 급물살을 탔다. 교수진 구성부터 커리큘럼 편성까지 저널리즘 스쿨의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린 사람이 이봉수 교수라면 김 총장은 저널리즘 스쿨의 산파 역할을 했다. 김 총장은 “지난 학기 60명 한도인 이 교수의 네 강좌에 300명 가까운 학생이 몰리고,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서울지역 학생들까지 청강하러 오는 것을 보고 저널리즘 스쿨을 추진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밝혔다.
‘聖’에 대한 김 총장의 상상력 넘치는 해석의 수원지는 그의 유년기를 지배했던 할아버지의 가르침이다. 김 총장의 조부는 스무 명이 넘는 대가족의 ‘수장’으로서 손자들에게 날마다 붓글씨를 가르쳤고, 손자들의 머리를 손수 잘라주며 이발에 쓸 돈은 저금을 하게 할 만큼 검약한 사람이었다고 김 총장은 회고했다. 그가 스스로 “일생 동안 나를 붙잡아주는 기준점”이라고 밝힌 고향 안동의 추억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정신의 기품을 강조한 조부의 가르침 안에서 숨쉰다. 김 총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저널리즘 스쿨은 ‘실무능력을 갖춘 수준 높은 예비 언론인’을 양성한다는 취지로 개설하는 2년제 대학원 과정이다. 국내 대학의 기존 언론학과가 이론 중심인 데 비해 저널리즘 스쿨은 교수진을 현장 기자 출신으로만 꾸리고 실무 위주의 커리큘럼을 편성했다. 저널리즘 스쿨 설립을 주도한 이봉수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저널리즘 스쿨 출신이 언론계의 주축을 이루는 것과 달리 한국의 경우 언론계에 언론학과 출신이 드물다”면서, 현재 저널리즘 스쿨이 한국 언론이 안고 있는 도제식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언론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용’을 강조하는 김 총장의 철학은 비단 저널리즘 스쿨 설립 과정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세명대는 전국 최고 수준의 취업률을 자랑한다. 2007년 11월 17일 현재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졸업생 수 1000명 이상 대학 가운데 1위인 취업률 93%를 달성했다. 여기에는 김 총장의 독특한 교육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 대학 졸업생들의 낮은 취업률의 원인을 학생들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교수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명대의 취업률이 전국적으로 소문나면서 여러 대학에서 문의가 들어온다. 비교해보면 다른 대학들은 학생들에 대한 대책만 갖고 있다. 세명대는 교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주문한다.” 세명대는 현재 2주에 한 번꼴로 총장 주재회의를 열어 학생들의 취업 현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한다. 대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능성 있는 일자리를 기피하는 학생들에게는 교수들이 직접 부모를 찾아가 설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 총장은 “부모들이 해마다 1000만 원씩 들여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데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말이 되는가”라며 “취업률이 낮을 경우 대학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되기만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이상주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총장의 실용주의가 외형만 강조하는 삭막한 실적주의를 향해 치닫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학생들에 대한 그의 바람을 “손에는 컴퓨터, 입에는 외국어, 머리에는 전문지식, 가슴에는 인덕”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덕이다. 내가 말하는 인덕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 대한 봉사정신을 뜻한다. 모두 자기만 최고라고 여기며 홀로 질주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이라는 그의 철학은 ‘미드필더십’이라는 세명대만의 독특한 캐치프레이즈에도 반영돼 있다. “미드필더십이란 세명대의 인재 양성 원칙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고르고 골라 만들어낸 것이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인재는 홀로 빛나는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박지성처럼 중원을 부지런히 뛰며 팀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미드필더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생각을 담은 말이다.” 김 총장은 경제기획원 예산총괄과장, 재경부 공보관,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국장,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재경부 차관 등 공직자로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공직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그는 외형보다 내실을 강조한다. “공무원은 벼슬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 내공이 쌓이는 속도보다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면 결국 낙마한다. 내공이 쌓이는 속도와 위로 올라가는 속도가 일치해야 한다.” 김 총장의 인생을 관통하는 두 가지 좌우명은 ‘신기독(愼其獨)’과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른다’는 말이다. 앞의 말은 그의 조부가, 뒤의 말은 조모가 강조한 삶의 자세다. 요컨대 남이 보지 않을 때에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사람을 대할 때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행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뒷말’을 남기지 않은 드문 공직자로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아마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글·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